촌놈의 촌 이야기

자판기를 처음 사용하던 날

인생 뭐 있나 2020. 11. 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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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만히 지갑을 열어보니 참 오래전에 뽑아 둔 현금이 그대로 있다.

아니 지갑을 열어본지도 참 오래된 듯한 느낌이다.

지갑을 열어본 것도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

우리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작년까지 그래도 문병도 갔는데 올해는 오지 말라고 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문병 간 날은 할머니의 기억력이 많이 안 좋으신지 했던 말을 여러 번 물어보셨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래도 어머니보다 더 내편 같은 분이 할머니였으니.

 

다시 지갑과 관련된 이야기로 돌아오면 작년까지 막내 삼촌이 병원비를 보내시고 소득공제를 받으셨다.

삼촌이 퇴직을 하셔서 이제 할머니 관련 소득공제를 내가 받게 되었다.

시골 아버지에게 병원비를 현금으로 받아왔다.

이 현금을 다시 송금할려니 ATM기를 찾아야 했다.

집 근처 가장 가까운 ATM기는 우리 아파트에 붙어있는 대학교내의 ATM기기였다.

역시 가보니 코로나로 입장이 쉽지 않았다.

돌고 돌아 ATM기기로 가서 입금했다.

물론 천 원짜리는 입금도 안된다. 영업시간에만 입금된다고 붙어있었다.

이제 최소 만원이 돈으로 인정될 정도로 물가가 올랐나 보다.

ATM기 옆에 자판기가 여러 대 서 있었다.

그래, 오늘의 촌놈의 촌 이야기는 바로 자판기와 관련된 이야기다.

내가 자판기를 처음 사용해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난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시로 유학을 나오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자취.

처음 교육청에서 학교 배정 관련 뽑기를 하고 학교까지 부모님이 같이 가주셨고 그 다음 날부터 나 혼자 다녔다.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 가게 상호를 적어가며 어디서 우회전 어디서 좌회전을 공책 들고 적어가며 어머니를 따라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2km도 안 되는 길로 집을 나서 직진 600m 큰길 나오면 우회전해서 큰길 따라 1km 정도 가서 횡단보도 건너 조금만 가면 학교였는데.

신호등 건너는 것도 낯선 촌놈에게 굉장히 무서운 길이었다.

도시학교의 가장 신기한 것은 매점이었다.

학교 안에 분식점과 과자 파는 가게가 있다니.

우동, 떡볶이, 컵라면 등을 팔았는데.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자판기였다.

음료수 자판기.

시골에서는 평소에 병으로 된 콜라, 사이다를 마셨다.

소풍 같은 큰 행사일에는 1.5L 콜라, 사이다를 사서 마셨다.

과자가 보통 백원하던 시절이라 워낙 비싼 편이라 자주 먹지는 못했다.

그런데 학교에 있는 자판기는 음료수 가격이 무척 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콜라 병으로 된 거 하나가 250원 정도였는데.

음료 자판기는 단돈 백 원에 한잔이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닌가.

촌놈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던 난 누구를 붙잡고 저거 어떻게 사용하니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촌놈하고 비웃을 것 같아서.

주머니에 동전은 있었지만 자판기 사용법을 몰라 음료수가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가 없었다.

3일 동안 쉬는 시간에 꼬박꼬박 매점에 가서 곁눈질로 자판기 사용하는 방법을 눈으로 익혔다.

'동전 먼저 넣고, 음료수 고르고, 기다리면 종이컵이 떨어지고 종이컵에 음료수가 가득 차면 마시면 된다.'

이제 확실히 어떻게 하는지 알았다 싶었지만 혹시 누가 보고 놀릴까 싶어 리허설만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욱더 만전을 기하기 위해 방과후에 애들이 다 집에 갈 때까지 매점 주위를 한없이 맴돌았다.

그렇게 매점이 한산해진 후에야 드디어 동전 백 원을 넣고 음료수를 뽑아먹었다.

30년이 넘은 지금도 그날이 기억되는 거 보면 굉장한 감동이었나 보다.

오백 원짜리 넣어서 잔돈 못 받을까 하여 주머니에 백 원짜리만 한가득 준비해서 실패를 대비한 그날.

내 인생에서 몇 천만 원짜리 차도 몇 억차리 집도 그날 종이컵이 뚝하고 떨어질 때 그 백 원의 행복보다 못하다니.

촌놈의 촌 이야기 쓸려고 해도 이제 점점 기억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점점 줄어만 간다.

나도 할머니만큼 안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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