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의 촌 이야기

개고기

인생 뭐 있나 2020. 9. 2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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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민감한 주제이다.

일단 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고기 먹는 문화자체를 터부시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인 생각은 인간은 다른 동물의 생명을 한없이 존중하기에는 지나치게 굶주린 포식자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소는 먹어도 되고, 돼지도 먹어도 되고 개는 먹으면 안된다.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개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회사에 젊은 미국인이 왔는데,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개고기가 건강에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어디가면 먹을 수 있냐고.

당연히 나는 모른다고 했더니.

며칠 후 회사에 젊은 친구가 데리고 가주더라고 자랑하더라.

그래 나의 어린 시절 개고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지금은 시골에서 사라진 문화임을 밝힌다.

가난한 동네였던 우리 동네.

동네 어르신들은 복날이면 십시 일반으로 돈을 모아 개를 샀다.

개 한마리를 잡아서 동네 잔치를 했다.

개를 잡는 것은 엄청나게 잔인한 행위라 어린 아이들은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뭐 사실 집에서 키우던 토종닭도 손님이 오면 잔인하게 모가지가 비틀리고 목이 댕깡 날라가긴 하지만.

그런데 십시일반 모아서 개를 사서 잡수시던 어른들이 뭐가 잘 못된건지 돈을 내지 않는 집이 생기자 방법이 바뀌게 되었다.

유사라고 1년에 한집씩 돌아가면서 개를 내기 시작했다.

좀 부유한 집은 개를 사와서 내고 그게 안되는 집은 집에 키우던 똥개를 잡아드시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집 차례가 되었을 때 였다.

우리집은 주로 마늘과 고추 농사를 지었는데, 하필 우리 집이 유사인 해에 마늘과 고추 파동이 왔다.

여기서 파동이란 생산량이 그 해 급격하게 늘어 가격이 폭락하는 일을 말한다.

어린 나도 부모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올해 우리가 유사인데 어쩌지."

"도사 한마리가 얼만데. 돈이 없어요."

대충 들으니 돈이 궁해 사오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집에는 똥개도 키우지 않았다.

아주 작고 귀여운 발바리 한마리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 넘의 발바리는 매일 우리 집 식구들의 신발을 물어뜯어서 혼나고 남에 집에 가서 남은 음식 얻어먹고 하는 놈이었다.

복날 점심에 우리집은 마을 어른들로 붐볐다.

어른들이 많이 오셔서 나도 음식 나르는 것을 돕고 있었다.

"이거 소고기 국이다. 니는 개고기 안먹으니 이거 먹어라."
어머니가 특별히 나를 위해 소고기 국을 주셔서 바쁜 와중에 밥은 한 그릇 뚝딱 먹었다.

어릴 때 나는 워낙 입이 짧아 먹는게 없었지만 소고기 국은 무척 좋아했다. 

자주 먹을 수 없었기에.

밥 먹고 나니 어머니가 무척 바빠지셨다.

"밖에 솥에 가서 국 좀 두 그릇만 떠와라."

시골에는 여름에 아궁이랑 연결된 솥은 쓰지 못한다. 

거기에 불을 때면 방이 더워져 생활이 안되니 마당에 별도로 솥을 걸고 장작으로 불을 붙인다.

임시로 만들어진 아궁이에 가마솥을 걸고 국을 끓인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솥에 뚜껑을 열고 나는 기겁했다.

개의 머리뼈가 솥안에 들어있는데 정말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치열이 그대로 보니는 머리뼈.

내가 먹은 소고기 국도 바로 개고기 국이었다.

바로 먹을 것을 토하고 말았다.

아침부터 보이지 않던 우리 집 발바리가 바로 솥에 들어있었다.

키우던 개를 잡아 먹을 수가 있냐고 그때는 엄청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가난한 형편에 우리를 키우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지금은 짠하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내가 몸이 많이 안 좋았을 때

"아이고, 어디에 개고기 하는 집이 있으면 한번 사먹이면 바로 좋아질건데."

하시며 우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 시절 동네 어른들은 없는 형편에 더운 여름을 지내기 위해 꼭 먹어야한다고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지금 시골은  소고기도 자식들이 많이 사주고 하기에 옛날과 같은 개를 동네에서 잡아먹는 문화는 사라졌다.

그래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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