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의 촌 이야기

핫도그의 추억

인생 뭐 있나 2020. 10. 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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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스트코에 다녀왔다.

코스트코에 간다니 아들 녀석이 핫도그를 사 와 달라고 했다.

코스트코 핫도그를 우리 아이들과 집사람은 참 좋아한다.

난 딱히 코스트코 핫도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명랑 핫도그에서 파는 기본 핫도그를 더 좋아한다.

난 핫도그는 젓가락에 꽂혀있여야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핫도그를 쳐다보니 옛 생각이 난다.

 

핫도그와의 첫 만남

내가 어렸을 때에는 튀김류를 많이 먹지 못했다.

내가 튀김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먹을 기회가 흔하지 않았다.

식용유 광고에서 나오는 새우 튀김은 먹는 게 소원일 정도로.

(사실 나중에 새우 튀김을 먹었을 때 굉장히 실망했다.)

식용유를 조금씩만 썼기에 튀김처럼 식용유 몇 통을 부어야 하는 튀김 요리는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제사용 한과를 집에서 만들 때나 튀김을 얻어 먹을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나마 우리 동네 아낙네들 중에서 가장 가방 끈이 길었던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도난스(도넛)라 불리던 과자를 집에서 가끔 만들어 주셨다.

하지만 석유 곤로로 튀김을 한다는 게 상당히 어려웠는지 어머니가 기름에 화상을 입으시고는 도난스도 더 이상 얻어먹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된다.

아버지를 따라 군 소재지 내 우시장에 갔다.

1년 정도 집에서 열심히 키운 송아지를 팔러 가는 날이었다.

시골이지만 우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노점상이 빽빽히 들어찼다.

그날은 아버지도 송아지를 생각보다 비싼 값에 파셨는지 한껏 기분이 좋으셨다.

지금으로 치면 길거리 분식점 앞에 서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들에게 

"뭐 먹을래?"

라고 물으셨고 난 이름을 잘 몰라 

"저거요."

라고만 말했다.

분식점 아주머니는

"핫도그?"

라고 되물으셨다.

"네."

자신 없게 대답하고 기름에 풍덩 빠진 핫도그를 바라보았다.

핫도그 주변에 기포가 부글부글 나면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지금 길거리에서 파는 길쭉한 모양의 핫도그가 아니고 동그란 핫도그다.

지금 길거리 핫도그는 기다란 햄이 들어가 있지만 시골 핫도그는 햄을 아끼려고 햄을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만 넣고

나머지를 밀가루 반죽으로 채웠기에 그 모양이 동그랬다.

커다란 츄파춥스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모양이야 어떻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도그를 설탕 통에다가 굴려 주셨다.

"케첩은 네가 뿌려먹어라."

요즘 유행하는 셀프서비스가 그때도 있었다.

30년도 훨씬 전인데.

사실 그날 케첩도 처음 먹어보았다.

케첩이 뭔지도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뿌려 먹지 않으면 손해날 것 같은 생각에 정말 케찹이 줄줄 흐를 정도로 뿌렸다.

케첩을 너무 많이 뿌리자 옆에 계신 아버지가 민망한지

"고만 뿌려라."

한 마디 하셨다.

그제야 케첩 뿌리기를 그만두고 크게 한입 베물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본전 생각은 많았나 보다.

(사실 아직도 뷔페 가면 배탈 난다. 본전 생각에 과식해서)

따뜻한 표면에 달달하고 쫀득하고 고소한 빵이 겹겹이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햄까지.

'와,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니.'

하나 더 먹고 싶었지만 버스 시간이 정해져 있어 더 사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핫도그와의 두 번째 만남

뭐 핫도그를 먹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네 친구들에게 

"니 핫도그 먹어봤나?"를 매일 물어보고 다녔으니.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하나가 이웃 읍에 핫도그를 파는 서점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왔다.

동(지금은 "리")이 모이면 면, 면 중에서 조금 크면 읍. 읍면이 모이면 군, 군과 시가 모으면 도.

사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서점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참고서는 전과라고 전과목 참고서가 있었는데 이 참고서는 거의 동네 형들에게 물려받았다.

부잣집 자식들은 전과를 새것을 사기도 했는데, 새 전과 사면 엄청나게 많은 장난감을 끼워줬다.

새 전과를 부러워하는 게 아니고 이 부록 장난감을 부러워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학구열이 워낙 높으셔서 수련장이라는 문제집은 매 학기 사주셨다.

가끔 이달 학습은 담임선생님이 회장이라고 한 권씩 주셨는데.

교사용이라 답이 다 달려있어서 별로 공부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3학년이 되어서 드디어 이 수련장을 내가 직접 가서 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문제집 사러 가는 게 뭐가 즐겁겠나.

게다가 이 문제집 우리 어머니는 검사하시는데 조금 덜 풀 거나하면 무조건 회초리로 다스리셨다.

버스 타고 8km 떨어진 읍내 서점에 가서 수련장 사고 남은 돈으로 100원(하드가 100원 하던 시절) 짜리 핫도그를 사 먹는 재미.

그 재미 하나 바라고 버스 타고 그 먼길을 달려갔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련장 사고 남은 돈으로 핫도그를 3개나 사 먹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맛있게 다 먹고 나서 알았다.

차비가 없다는 것을.

그날 난 8km를 걸어서 집에 갔다.

학교에서 집까지 4km 거리는 자주 걸어 다니지만 8km를 걸어서 간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다행히 집에 왔을 때 어머니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점심 버스 다음 버스가 저녁 버스인데 집에 도착하니 딱 저녁 버스 도착 시간이었다.

 

핫도그와의 상시 만남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드디어 우리 면 소재지(학교, 교회, 경찰서, 우체국이 있는 곳)에도 핫도그 가게가 생겼다.

가격은 50원, 크기는 무척 작았다.

특히 햄은 손톱만 한 햄이 들어가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핫도그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하교 시간이면 핫도그 전 앞에 아이들로 북적였다.

사 먹으려고 서 있는 아이.

"한 입만"을 외치는 아이.

나도 거의 매일 하교 길에 사 먹었다.

 

핫도그 파동

그렇게 인기 좋던 문방구 핫도그는 좋지 못한 결말로 끝이 났다.

지금이면 기름 재활용을 너무 많이 해서 위생 점검에 걸렸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문방구 주인집 아들은 나보다 2살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 문방구집 형이 열심히 나무젓가락을 줍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들이 장사하면서 더러워진 길거리를 청소하나 보다 했다.

사실 이 일로 그 형은 학교에서 선행상도 받았다.

그 당시 문방구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었기에 문방구를 기점으로 많은 나무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문방구집 형이 주웠던 것이다.

그렇다. 

그 문방구집 형이 주웠던 젓가락을 대충 씻어서 다시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땅에 떨어진 과자도 후후 불고 다시 먹던 시절이지만.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그 집 핫도그 먹지 말라고 혼을 내기 시작했다.

차츰 손님이 줄더니 그렇게 문방구 핫도그는 문을 닫았다.

기름에 튀긴 음식이 귀하던 그때의 핫도그가 정말 맛있었는데.

코스트코 핫도그를 사면서 옛 생각이 떠올라 그냥 적어보는 촌놈의 촌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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