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똥철학

택배 그리고 화가 난 이유

인생 뭐 있나 2020. 9. 2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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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퇴근 길에 집 앞에 커다란 선물 상자가 와 있었다.

우리 집에 올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란게 그렇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택배에 적힌 수취인. 역시나 나에게 온 물건이 아니었다.

그렇다.

내가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이사 시기가 잘 맞지 않아 이 집을 한 2년 정도 월세를 주었다.

그 때 세입자가 중견 건설업체 사장님이었다.

본인들의 집이 너무 커 관리가 어렵다고 다시 작은 집을 짓는 동안만 우리 집에 월세 사시겠다고 해서 월세를 놓은 것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그 분들은 집이 아직 덜 지어졌다고 우리 동 윗층으로 이사를 가셨다.

그런데 설날, 추석 명절만 되면 난 택배기사가 되었다.

뭔 말인가하면 명절 1~2주 전 부터 우리 집은 과일, 술, 햄, 치약 등 생활 용품 갖가지 선물 용품이 수북히 쌓인다.

하지만 내것이 아니다.

이전에 사시던 사장님 이름으로 온 것이다.

처음에 몇개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올려드렸다.

그런데 너무 많으니 감당이 안되서 인터폰으로 저희 집 쪽으로 택배가 많이 왔으니 가져가시라고 연락을 드렸다.

노인 두분이 내려오셔서 끙끙거리며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안쓰러 내가 올려다 드렸다.

그 분들이 우리 아파트 떠날 때 까지 2년을 그렇게 명절 전에 택배업무를 보았다.

그 뒤 한 두해 몇몇 잘 못 배달된 택배가 왔지만 내가 올려다 드렸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사장님이 이사가신지 어언 6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묵직한 택배가 우리 집으로 잘못 배송된 것이었다.

월세 기간이 끝나고 나서 그 분들의 연락처 및 인적사항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택배 송장에는 택배기사 전화번호도 없었다.

유일하게 붙어있는 것은 보내신 분의 전화번호가 있을 뿐이었다.

보내신 분에게 전화를 했지만 잘 받지도 않으셨다.

일이 이렇게 되니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뭐 나중에는 연락이 되어 그 분이 가져가시겠다고 하고 얼마 후 가져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난 왜 화를 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전화 몇 번한게 너무 힘들어서 속상한 것일까?

아니다.

갱년기라 이유없이 화가 나나?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기심이 더 큰 것 같다.

건설업체 사장님은 누군가 주소를 알아내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하청업체건 은행이건 그것도 아니면 부하 직원이든.

나 같은 월급쟁이는 갑과 을에서 항상 을의 입장인데.

그냥 이 택배의 주인이 되시는 분은 갑인 것 같아서 내 내면에서 화가 끓어 올랐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연애인에게 선물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보냈겠냐만은.

대가를 바라고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은근히 나도 한번 갑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을의 입장의 주인공이 갑의 입장인 악역을 혼내주면 통쾌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을라나.

여튼 내것 아닌 택배로 인해 나도 누군가 위에 군림하고 싶고 갑이 되고 싶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하루다.

나도 관심과 사랑과 선물을 받고 싶은 중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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