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의 촌 이야기

오리털 잠바에 대한 추억

인생 뭐 있나 2020. 1. 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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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의 촌 이야기 

오늘의 주제는 옷이다.

그 당시 아이들의 양말은 뒤꿈치에 구멍

엄지발가락에 구멍 

엄지발가락에 구멍 나면 어머니가 꿰매 주시고 다시 신었다.

신발은 운동화 한켤레 여벌의 운동화는 없었다.

얼마 전에 쓴 시게또란 글에도 있지만 

물에 빠지면 젖은 신발을 다시 신어야 했다.

신발 젖은 채 집에 가면 여지없이 혼났던 기억이다.

젖은 운동화는 아궁이 앞에 나무꼬챙이를 꼽고 거기에 걸어 말렸다.

2학년 때인가 겨울에 신나게 놀고 신발이 젖어 어머니가 아궁이 앞에 말리려 나무 꼬챙이에 걸어두었다.

꼬챙이 두개를 팍팍 땅에 박고 거기에 신발을 걸어 두셨다.

아침에 학교 가려고 보니 꼬챙이 하나가 쓰러져 신발이 숯에 다아 엄지발가락 쪽이 타서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 난 신발 못 신고 간다고 떼쓰다 엄청 엄청 혼났다. 마당 쓰는 커다란 빗자루로 맞을 뻔했다(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서론이고 오늘은 옷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5학년 때에 일이다.

지금은 광역시지만 **직할시에 사시는 고모가 잠바를 하나 보내주셨다.

하늘 색에 가볍고 따뜻한 잠바였다.

왼쪽 가슴에 가로 3cm 세로 한 6cm 정도의 크기로 오리가 바느질되어 있었다.

아직 우리 반에 오리털 잠바를 입고 온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이 잠바를 받은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오리 그림이 가슴에 딱 붙어있었으니 당연히 이 잠바는 오리털 잠바일 것이다.

왠지 입으니 가볍고 따뜻했다.

날이 밝자마자 우선 동네 아이들에게 

"야, 이거 오리털 잠바다. 좋제?" 

자랑이 시작되었다.

학교까지 4km가 넘는 길을 자전거 타고 가는데 그날은 하나도 춥지 않았다.

역시 오리털 잠바는 따뜻했다.

옛날 교실에는 난로가 있었는데 나무, 솔방울, 석가탄 요즘 보기도 힘든 것을 태워서 교실을 따뜻하게 했다.

나중에 학교에 대해 다시 적겠지만

난 키가 작아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난로 바로 앞이었다. 

언제나 뜨거워 얼굴이 벌게졌는데.

그날따라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으니 땀이 주룩주룩 흘렸다.

"야, 이거 오리털 잠바다. 내 봐라 역시 오리털 잠바 입으니 땀이 난다."

반 친구들을 다 몰려 왔다.

물론 오리털 잠바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 학년에 두 반 밖에 없었는데, 다른 반 친구들도 다 모였다.

만져보는 친구, 입어보자고 조르는 친구.

기분이 한껏 좋았고 어깨가 막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근데 그때

"야, 이거 진짜 오리털 맞나?"

기분은 나빴지만 뭐 

왼쪽 가슴에 오리 그림을 딱 가리키며

"이거봐라, 여기 오리 있지."

그 넘은 우리 학교에서 얼굴이 가장 새까만 놈인데.

나에게 그런 말을 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애가 한번 가죽잠바를 입고 왔는데, 진짜 가죽이다라고 하길래.

"야, 이거 만져보면 가짜 같은데."

내가 한 말이었다. 그 이후로 친구들 다 만져보고 가짜 같다고 말했다.

"진짜면 라이터로 소매 끝 지져보자. 가죽은 안 쪼그라든다. 진짜라며 진짜는 잠깐 그슬려봐도 괜찮다."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시골에서는 5학년이면 그때는 라이터를 가지고 다녔다. 담배 피우려고가 아니라 통학할 때 자전거를 타고 온다.

겨울이라 손잡이에 토시를 달아도 너무 손이 시려 멀리서 올 때는 중간중간 쉬면서 논에 있는 짚단을 태워 손을 녹이고 

학교에 왔기에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많았다.

진짜라고 믿었던 얼굴 제일 까만 친구(뭐 그 당시 다 까맣지만 제일 까만)는 

"라이터 가와 바라." 하고 소매를 그슬렸는데 웬걸.

바로 소매가 오그라 들었다. 

그렇다 진짜 가죽이 아니고 가짜 가죽, 지금으로 말하면 레자였다.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하는 친구를 열심히 달랬지만 

내랑 라이터로 지져보자는 친구랑 라이터 빌려준 친구는 3일 넘게 그 녀석에게 빌고 또 빌었다.

다시 내 오리털 잠바 이야기로 돌아오면

난로 위에 항상 커다란 주전자를 올려두고 도시락도 난로 위에 차곡차곡 올려두었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밥을 먹을라고.

점심시간 얼굴 가장 까만 친구는 자꾸 

"이거 오리털 아니다. 내가 안다. 끝에 조금만, 실밥 몇 땀만 따 보자."

졸졸 따라다니며 내 잠바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있었다.

우리 학교 최초의 오리털 잠바를 입으신 나에게.

열 받아한 대 치고 싶었지만 가죽 잠바 사건도 있고 해서 꾹 참았다.

오후에 집에 갈 때쯤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집에 가기 전 주번은 난로에서 나온 재를 버리고 가야 했다.

아, 그때 재를 퍼내다가 난로 굴뚝에 잠바가 대여 팔꿈치 옆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 버렸다.

새 옷에 그것도 내 오리털 잠바에 구멍이

그런데 더욱 슬픈 건 잠바 안에는 가득 들어 있어야 할 오리털은 하나도 없고 솜만 하얀 솜만 가득 들어있는 게 아닌가.

잠바에 구멍 난 것보다 잠바가 오리털이 아닌 게 더 슬펐다.

집에 오니 어머니가 새 옷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뭐라고 하셨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님은 가슴에 있던 오리 부분을 과감하게 떼셔서 소매의 구멍을 바느질로 메우셨다.

다음날 어제는 그렇게 따뜻하던 잠바가 오늘을 이상하게 하나도 따뜻하지 않았다.

학교에 와서 친구들에게 어제 여기 구멍 났는데 봤는데 오리털 있었거든 하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옷 한 벌이 주는 기분은 그때가 더 컸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야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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